한국바둑의 풍운아 이세돌이 드디어 은퇴를 선언했다!!
95년 입단한 후, 24년 4개월 만이야..
다른 스포츠계와 달리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은퇴를 하지 않는 바둑계에서
83년생인 이세돌의 은퇴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지.
허나 그의 은퇴는 예견되어 있었고,
또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놀랍지만은 않았어.
그는 입단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한 이후부터
한국기원과 꾸준히 마찰을 빚어왔지.
3단시절, 당시에 한국프로기사는 승단대회를 통해서
일정한 포인트를 쌓아야 승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최초로 반기를 든게 이세돌이었어.
한창 잘나가는 그의 입장에서는 한 해 둬야 하는 대국수도 많고
스케쥴도 빡빡한데,
별 의미도 없고, 대국료도 적은 승단대국을 두기 싫었을거야.
당시에 아직은 활황이었던 국내 외 많은 토너먼트대회에 집중하는것이
자신의 커리어적인 면과 금전적인 부분에 도움이 될것은 명백했거든.
1인자에게 많은 의존을 하게되는 바둑계의 특성상
이창호 이후 새로운 황태자로 떠오른 이세돌의 입김과 파워는 대단했지.
그렇다고는 해도 주변눈치안보고 자기목소리를 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을거야.
이세돌의 반기에 한국기원은 결국 승단대회를 폐지했고
각종 대회의 성적에 포인트를 부여해 승단포인트를 쌓는식으로 시스템을 바꿨어.
이는 이세돌과 같은 초일류 기사에게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90프로 대다수의 기사들, 특히 토너먼트기사가 아닌
생계형, 보급형 바둑기사들에게는 매우 서운한 일이었어.
왜냐하면 그들은 바둑기사이기는 해도 실력이 부족해
각종 대회의 예선에 참가해도 본격적으로 대국료를 받게되는 본선을 오르기는 불가능하고
1년에 둘 수 있는 대국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
대국을 둬야 대국료가 나오는데 승단대국등을 제외하면
수입이 마땅치가 않았던거야.
그래서 어찌보면 낡은 관행타파에 앞장섰던 이세돌이었지만
관행에 익숙했던, 기존의 이익을 원했던 사람들은
이세돌을 많이 미워했어.
아무튼 이세돌은 무서운 속도로 입신이라 불리는 9단에 승단했고,
국내는 물론이고 메이져 세계대회에서도 날아다니며
세계1인자의 자리를 수성해 나갔어.
하지만 쌓이는 상금이 많아지는 만큼 한국기원과의 문제는 또다시 불거졌어.
한국기원은 일률적으로 상금의 10~15%를 공제했고
또한 기사회에서도 3~5%를 또 공제했어.
예를 들어 중국이나 일본주체 세계대회 우승을 하면
그 나라에서 세금을 공제하고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또 공제하고 한국기원에서도 공제,
마지막으로 기사회에서도 공제를 하기 때문에 빡칠만도 했지.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기사회의 공제인데,
기사회는 사실 친목단체일 뿐이야.
하지만 프로기사들은 예외없이 입단시에 기사회에 가입되었고
그에 따라 소속기사들의 상금을 공제해갔지.
한국기원이나 기사회의 입장에서는
특출난 소수의 기사들이 혜택을 받는 바둑계의 특성상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개념으로 다수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개념으로 봐달라고 했고
이세돌은 그에 강력하게 반발했어.
이세돌과 한국기원이 부딪힐때마다
이세돌이 휴직계를 내버리고, 법적인 태클을 걸자
한국기원은 정관을 고쳐나가기 급급했지.
예를 들어 기사회의 소속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등등
은퇴를 한 현 시점에서도 소송은 진행중이고
아마 1차변론기일을 마친것으로 알고 있어.
이세돌은 친목단체인 기사회에서 상금을 공제한것에 대해
3200여만원의 금액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했는데
이면을 살펴보면, 영수증처리요청도 무시하고
집행내역공개도 거부하는등 문제가 없지만은 않은 것 같아.
이세돌은 프로기사 커리어내내 협회와 마찰을 빚어왔고
천성이 반골인듯한 그의 기질 상 돈문제를 떠나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끝까지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
이세돌이 돈을 밝힌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중국쓰촨성지진때는 당시 우승했던 대회상금을 전액기부하기도 하는걸 보면
돈보다는 명분과 신념을 따른다는 느낌을 받게 돼.
이세돌의 특성을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세계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이창호의 모습과 비교되는게 있어.
당시에 세계대회를 참가하면 주최측에서는
본선참가기사에게 여비를 지급해주는 것이 보통이었어.
예를 들어 일정이 열 흘 이면 하루 당 10만, 총 100만 원을 준다던지 하는식으로 말야.
이걸로 식사를 해결하고 품위유지를 하라는 것인데,
문제는 대회에 참가하면 기사만 딸랑 가는것이 아니고
협회직원들도 따라가야하고 국가대표코치진 등도 같이 가게 마련이지.
근데 이창호의 경우에는 여비를 받으면, 큰 돈은 아니지만
협회직원에게 봉투를 그대로 주며 알아서들 쓰세요..
하곤 했단 말야?
그럼 직원들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운거지
박봉에 해외출장인데(경비처리가 되는건 둘째치고) 그런식으로 도와주면 좋아하지 않을수가 없잖아?
하지만 이세돌에게는
그런식의 마인드는 통하지 않았지 ㅋ
한번은 으레그랬듯이 선배기사들과 후배기사들, 직원들이 모여 같이 식사를 하고
기사들이 갹출을 해서 엔빵치자~ 했는데
이세돌은 내가 왜요? 싫습니다하고
혼자서 내가 먹고 싶은거 먹고 내 몫만 내겠다~ 했다는 일이 있어.
철저한 개인주의이고 아메리칸 마인드지.
선악의 문제는 각자 개인들이 판단할 문제지만
보수적이기로 끝판왕인 바둑계에서는 당연히 곱게 보질 않았겠지?
하지만 실력이 출중하니 어떻게 응징할 수가 없었던거야~
그래서 이세돌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싸워나갈 수 있었던 거지..
근데 그렇게 이세돌이 같이 모여 식사하는걸 거부한 이후로
그런 문화가 없어졌는데 후배기사들은 굉장히 좋아했다고 해.
프로기사들이라고 해도 세계대회에서 잘나가는 건 보통 10대~20대인데
단장이하 직원 및, 선배들이랑 식사를 하는건 불편하기도하고
메뉴도 어른들이 정하고 여러모로 싫은 점이 많았을거야.
경기력유지를 위해 편하게 있어야 할 자유시간마저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데 이세돌사건 이후로
각자 알아서하는 문화로 바뀌었다니 당연히 좋아할 수 밖에.
이외에도 한국바둑리그의 문제도 이세돌과 충돌을 빚어왔어.
바둑의 인기 및 흥행보다는 기존의 밥그릇 및 대국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이었거든~
근데 300명 이상의 대다수의 프로기사들과 협회 및 직원들은 다 이세돌의 반대편이라는게
그에게는 외로운 싸움이었지. 실력보다는 복지에 신경을 써주는게 그들에게는 이익이었으니까.
이것까지 서술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거 같아서 스킵할게.
아무튼 이세돌 은퇴의 표면적인 이유는
성적저하에 따른 1인자의 자존심이 용납을 할 수 없기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이지만
커리어내내 갈등을 빚어왔던 한국기원, 기사회, 동료바둑기사들과의 관계가
결국은 걸림돌이 되었다 라는게 결론이야.
여담이지만, 이세돌의 입장에서는 돌부처 이창호가 선배라는게 참 운이 없었던거 같아.
성격과 행보, 1인자에서 내려온 이후까지 너무나도 정반대의 모습이거든.
물론 이창호가 전주의 유명한 금은방시계점 금수저출신이라는 점과
이세돌은 선생집안의 신안 비금도 출신이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많이들 아는 이야기지만, 이세돌은 5남매이고 전부 서울로 상경을 했어
이세돌이 성적을 내고 크게 성공을 하기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를 많이 따랐던 이세돌은 실어증이 걸릴 정도였지.
그 후유증으로 목소리에도 이상이 왔다고 해.
가난했던 집안에
5남매가 전부 서울에서 생활(큰형은 프로기사, 둘째형은 서울대공대입학, 누나둘은 이대입학)을 했기에
더더욱 어려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큰형인 이상훈 기사가 이세돌의 기재를 보고 뒷바라지를 많이 한것은
바둑계에서 유명한 이야기야.
이세돌은 흙수저이기때문에 관행에 반기를 들고 개인의 이익을 철저히 강변했던것일까?
그것까지는 난 모르겠어..
아무튼 이창호는 바둑실력을 떠나 인품으로도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이었고
이세돌은 바둑계내에선 욕을 먹었을지언정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기사임에는 분명하지.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세돌의 인지도가 넘사벽이니까 말야.
그이후로 박정환(서울), 신진서(부산)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서 참 다행이고~
이세돌이 조훈현처럼 은퇴한 후 정치를 한다면
철저히 합리적이고 자유주의자적인 그의 면모를 봐서
보수계로 입당하면 잘 어울리것 같다는 생각을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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