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제패했던 이세돌이지만, 그에게도 라이벌은 있었어.
바로 중국기사인 구리(古力)였지.
사람들은 보통 이세돌이 구리에게 많이 앞선다고 생각을 하지만 착각이야
두사람의 상대전적은 25승 1무 25패, 정확하게 반반이지.
아마도 이세돌의 승리에는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대국이 많았기 때문일거야.
인연이랄까, 악연이랄까 두사람 사이에 본격적인 불이붙는 사건은
바로 2012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즈였어.
이전까지, 이세돌이 세계1인자이기는 하지만 동갑내기기사 구리의 활약도 만만치는 않았어.
실제로 조별예선에서 만난 두 사람은 4패빅이라는
수많은 바둑대국에서도 정말 보기 힘든 무승부를 연출했고,
재대국끝에 구리가 승리하여 먼저 상위라운드로 진출하게 돼.
이세돌도 이후 다른 기사들을 잡으며 결국
진검승부처럼 세계메이저대회인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3번기(3판2선)로 두사람은 맞붙게 되었던거야.
삼성화재배는 이름에서 알다시피 우리나라대회이고 따라서 우리나라룰로 진행하게돼.
잠깐 룰에 대해 간단히 짚고넘어가자면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수도 있는데,
쉽게말해서 바둑을 다두고 집계산을 할 때(계가)
중국룰은 백에게 덤을 7.5집을 주고, 한국룰은 6.5집을 주지. 한 집 차이야.
흑이 먼저두는 만큼 그 유리함을 상쇄시켜주는 개념인데 그 유리함이 어느정도냐를
다르게 보는게 중국과 한국의 차이였지.
결승전의 결과는 1국과 3국에서 이세돌이 승리하면서 2:1로 우승을 하게 돼.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이세돌은 두 판 다 반집승을 하였고,
구리는 2국에서 만방으로 불계승(초토화를 시켜서 이세돌이 포기)을 했지.
중국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이세돌이 얄미워 죽겠는데
이 결승전의 결과로 아주 분통을 터트리게 돼.
大李未走 小李又至 (대리미주 소리우지) 라는 말이 중국에 있었는데
큰 이가 가지도 않았는데, 소 이가 왔다라는 뜻으로
이창호와 이세돌을 비유한 말이지.
중국에서도 존경의 대상이고 우상이었던 이창호만큼
이세돌의 실력도 인정을 받았던 거야.
하지만 이세돌을 이창호처럼 완전한 지존으로 인정하기에는
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구리라는 존재가 용납을 안했는데
결승전의 억울한? 패배로 그 아쉬움이 폭발했던거지.
이때, 가구재벌이자 구리의 광팬이었던 니장건 회장이
구리의 패배를 납득하지 못했는지 전설의 10번기의 스폰서로 나서게 돼.
바둑역사적으로도 10번기는 몇 번 있었는데
근대에 들어와서는 거의 없었고 오래된 대국들도
토혈대국으로 비유될만큼 이른바 목숨을 거는 대국들이었어.
왜냐하면 10번기는 핑계의 여지가 없는, 그야말로
실력대 실력의 진검승부이기때문에 패자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큰 이벤트였거든.
그렇기에 스폰서의 문제는 둘째치고,
한창 잘나가는 두 기사가 이렇게 맞붙는것은 사실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던 거야.
당시 국내대회의 상금은 많아야 5천만원이었고
메이져세계대회의 상금은 3억원 정도였어.
그런데 두 사람의 10번기의 상금은 무려 약 10억원.
어마어마한 상금이었던만큼 승자와 패자의 상금분배에 관해서 조율을 하던 중
(보통 세계대회우승 3억, 준우승 1억5천)
이세돌은 강력하게 승자독식을 주장하게 되고
결국 승자가 약 9억, 패자가 약 4천만원이라는 바둑사에 찾아볼 수 없는
Winner Takes It All 경기가 열리가 되지.
대국룰은 당연히 중국룰이었고,
10번기는 약 한달에 한 대국씩 중국의 명소들(9곳)과 한국의 신안(이세돌의 고향)에서 두기로 합의했어.
합의과정에서 재밌던 점은 이세돌이 제한시간 약 4시간의 장고대국을 주장했고
속기파로 유명했던 구리가 이를 쿨하게 받아들였다는 것,
또 결과가 5:5가 되면 주최측은 추가3번기를 제안했는데
이세돌이 그러면 뭐가 10번기냐, 그렇게 되면 상금은 반반으로 하고 끝내자라고 해서
거의 이세돌의 주장을 들어줬다는 점이야.
10번기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구리의 패배를 납득하지 못했는지 전설의 10번기의 스폰서로 나서게 돼.
바둑역사적으로도 10번기는 몇 번 있었는데
근대에 들어와서는 거의 없었고 오래된 대국들도
토혈대국으로 비유될만큼 이른바 목숨을 거는 대국들이었어.
왜냐하면 10번기는 핑계의 여지가 없는, 그야말로
실력대 실력의 진검승부이기때문에 패자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큰 이벤트였거든.
그렇기에 스폰서의 문제는 둘째치고,
한창 잘나가는 두 기사가 이렇게 맞붙는것은 사실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던 거야.
당시 국내대회의 상금은 많아야 5천만원이었고
메이져세계대회의 상금은 3억원 정도였어.
그런데 두 사람의 10번기의 상금은 무려 약 10억원.
어마어마한 상금이었던만큼 승자와 패자의 상금분배에 관해서 조율을 하던 중
(보통 세계대회우승 3억, 준우승 1억5천)
이세돌은 강력하게 승자독식을 주장하게 되고
결국 승자가 약 9억, 패자가 약 4천만원이라는 바둑사에 찾아볼 수 없는
Winner Takes It All 경기가 열리가 되지.
대국룰은 당연히 중국룰이었고,
10번기는 약 한달에 한 대국씩 중국의 명소들(9곳)과 한국의 신안(이세돌의 고향)에서 두기로 합의했어.
합의과정에서 재밌던 점은 이세돌이 제한시간 약 4시간의 장고대국을 주장했고
속기파로 유명했던 구리가 이를 쿨하게 받아들였다는 것,
또 결과가 5:5가 되면 주최측은 추가3번기를 제안했는데
이세돌이 그러면 뭐가 10번기냐, 그렇게 되면 상금은 반반으로 하고 끝내자라고 해서
거의 이세돌의 주장을 들어줬다는 점이야.
10번기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1국과 2국을 이세돌이 연달아 승리하였고,
3국과 4국(신안)을 구리가 승리하면서 2:2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게 되지.
두사람의 운명을 가른 그 유명한 5국은 중국 원난성의 샹그릴라에서 열렸어.
이 대국 이전까지 이세돌은 구리에게 4연패(10번기 중 2연패 포함)중이었고
이세돌 개인적으로도 구리에게 4연패는 처음이었어.
5국마저 지게되면 5연패에 빠지고
10번기의 승부도 승승패패패로 역전을 허용하는 절체절명의 한판이었지.
샹그릴라는 고산지대로 골초였던 이세돌의 표현을 빌리자면
담배1갑을 피면 평소의 담배10갑을 피는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해.
고산대국으로 두사람의 건강도 염려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혈기왕성했던 나이답게 무사히 대국은 끝나게 되고
결과는 이세돌의 승리.
이 후 3연승을 추가하며 총 전적 6대 2로 10번기의 승자는 이세돌로 확정되었지.
마지막 8국은 구리의 고향인 충칭에서 열렸는데
구리입장에서는 참 뼈아픈 대국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중국에서는 이세돌의 사주(83년 3월 2일)가 구리의 사주(83년 2월 3일)와
상극이라 구리가 이세돌에게 기를 못 펴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어.
구리와 이세돌
승부의 세계에서 정이 든 만큼
두사람은 우정도 나눴는데, 둘다 주당으로 만나면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곤 했다고 해.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결혼식에도 참가해 줄 정도..
이후 이세돌은 명실상부한 세계1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 먼저 메이져세계대회 우승을 한 건 구리였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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