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2019. 11. 21. 10:11

반출생주의


반출생주의(反出生主義)는 말 그대로 출생에 반대하는 사상이야.

 

아무래도 이 사상에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사람이 많을 거야.

번식이 당연하고 생일을 축복하는 게 당연한 사회 풍토에서 살아온 세월이 길면 길수록 더 그럴 수 있겠지.

사실 과거에는 더 심해서, 일단 출산에 방해되는 요소들은 엄청 탄압받았지. 아직도 그런 분위기가 좀 남아 있고.

자살, 안락사, 독신, 딩크족, 동성애 이런 것들 말야.

 

왜 사람들은 편파적으로 존재만 미화하고 비존재는 안 좋게 볼까.

진화심리학적으로는 그런 마인드가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겠지?

유성생식과 성욕의 존재 이유가, 나아가 우리를 포함한 모든 존재의 이유가 그렇듯이 말야. 그냥 그뿐인 거지.

 

분명한 건 생물이 번식하는 게 당연한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자연주의의 오류에 기대는 게 냉철하고 이성적인 반박은 아니라는 거야. 길거리에서 개새끼가 홀딱 벗고 다니다 헥헥대며 마운팅한다고 그걸 따라하진 않을 거잖아.

 

그니까 아무리 이 사상이 잘못됐다는 직관적 확신이 들더라도,

정말 그 맹목적인 확신이 옳은지 한 번만 차근차근 따져보자는 거야.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말이지.

 

왜 출생에 반대하느냐. 이유는 정말 다양할 거야. 

사람에 따라 환경 파괴가 맘에 안 들어서, 인간에게 철저히 착취당하는 동물이 불쌍해서 같은 이유도 있겠고 페미적인 문제도 있겠고 기득권에 대한 소심한 복수일 수도 있고 온갖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

 

사실 개인적으로는 어떤 문제를 생각하든 그걸 끝까지 파고들면 결국 반출생주의에 도달한다고 생각하긴 해.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어떤 문제도 없었을 테니까..

 

데이비드 베너타 등 여러 반출생주의 성향 철학자들의 윤리적 논증은 대개 동의 없이 아이에게 고통을 제공한다는 것에 집중되어 있어. 

 

출산이 기존 윤리와 모순되고 일관성이 없다는 주장이야.

이게 반출생주의의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지.

이에 대해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말해볼게.

 

일단 논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전제를 살펴야겠지?

인간의 여러 윤리 중에서도 기초에 속하는 게 있지.

바로 남에게 고통을 주지 말자는 거야.

반출생주의



우리가 남에게 쾌락을 깜짝 선물하지 못한다고 그게 죄가 되진 않지?

하지만 남에게 뜬금 없이 고통을 선물한다면, 그건 죄라고 생각하지.

 

여러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인간은 서로에게 고통을 줄 수밖에 없어.

진실을 말해도 침묵해도 심지어 누군가를 위해 희생해도 누군가에겐 고통이 되니까.

 

따라서 예외적인 면책 조항이 붙게 돼. 

암묵적으로라도 상대 동의를 얻고 합의를 하면 괜찮다고.

 

예를 들면 칼이나 자동차 때문에 누군가는 아프고 죽겠지만 일반적으로 리스크보다 리턴이 더 크다고 보니까 다들 암묵적으로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 같은 거야.

 

근데 우리가 암묵적으로조차 합의하기 어려운 대상이 있지? 

금치산자, 한정치산자 같은 표현을 들어봤을 거야. 

 

왜 어린이와는 설령 동의를 얻어도 섹스를 하면 범죄일까? 어린이는 판단력이 낮으니 정당하게 동의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지? 

페도 새끼들이 범죄자 중에서도 특히 쓰레기 취급받는 이유도 이렇게 비열하게 저항하지 못하는 대상을 노리기 때문일 거야.

 

그 밖에 정신 지체나 식물인간 같은 경우도 있고, 아기는 말할 것도 없겠지.

설령 정상인이더라도, 심지어 평소 걸레더라도, 미리 동의 없이 인사불성으로 만취했는데 따먹으면 당연히 범죄야. 

 

근데 이렇게 합의가 어려운 것을 넘어서,

아예 그게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대상이 있어. 

 

바로 태어나기 전의 비존재야. 

이건 태아, 배아, 정자와 난자, 하다못해 미세먼지보다도 더 가능성이 없지. 아직 존재하지 않으니까.

 

즉 아이를 낳는 것은 절대적으로 부모의 일방적인 폭거일 수밖에 없다는 거야.

고작 자신의 번식 본능 때문에 동의 없이 고통받게 하고 죽음의 공포를 선사한다는 거지.

 

하이데거는 인간은 세상에 피투된(던져진) 존재라고 말했어.

훌리오 카브레라는 세상은 구조적으로 고통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상태고, 타인에게 고통을 가할 수밖에 없기에 존재하는 순간 이미 도덕적으로 실격이라고 봤어. 그리고 부모는 아이를 이런 부정적 구조 속에 던지는 최악의 짓거리를 한다고 봤지.

 

이렇게 말하면 고통이 전부는 아닌데?라고 반박할 수도 있을 거야.

종합적으로 쾌락(행복)이 더 클 수도 있지 않냐고 할 수도 있겠지.

 

사실 석가모니나 쇼펜하우어 등 많은 철학자들이 세상은 고통이 더 크다고 보고 내가 봐도 그렇지만,

만족할 만큼 배가 부른 누군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는 걸 알아.

 

근데 문제는 고통이 어쨌거나 존재한다는 거고,

고통이 더 클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는 그 확률이 높든 낮든 절대로 부정할 수 없다는 거야.

심지어 모든 고통이 꼭 쾌락으로 상쇄된다는 보장도 없어.

 

아무리 잘 살아도 불의의 사고 한 방에 훅 갈 수도 있지.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고, 욕망은 끝이 없으니 만족 못하고 개짓거리하다 몰락할 수도 있고, 사는 동안 행복했어도 오히려 그 때문에 더 살고 싶고 죽기 싫은 공포 속에서 죽기도 해.

 

그리고 99%의 부모는 이런 가능성을 알면서도 별 생각 없이 막연한 낙천적 감성으로 낳고 봐.

불행할 수도 있고, 출산 중에 잘못될 수도 있고, 심지어 언젠가 반드시 죽을 걸 알면서도 아이를 만든다고. 

그래서 에밀 시오랑은 부모는 모두 무책임하거나 살인자라고 일갈했어.

 

사실 니 인생을 판돈으로 걸고 리스크와 리턴을 재면서 도박한다면 뭐 어쩌겠어.

인생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 이건 결국 베팅의 연속이라는 말과 같잖아?

 

문제는 자기 인생이 아니라,

태어날 아이의 인생을 가지고 도박을 한다는 거야. 

 

자기 인생은 이것저것 재면서,

왜 아이는 별 생각 없이 그냥 남들 다 낳고 주위 눈치 보이니까, 

노후에 쓸쓸할까봐, 결혼의 증거물 같은 용도로 낳는 걸까.

정말 자기 아이가 소중하다면 낳는 걸 엄청 고민하는 게 정상 아닐까?

 

왜 이게 끔찍한 도박인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극단적인 예시를 들어볼게.

 

개독은 천국과 지옥을 믿지?

이 말은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이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뜻이 돼.

 

물론 자식이 천국에 가면 좋겠지.

근데 자식이 절대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어. 

야훼 안 믿을 수도 있고, 사이비 믿을 수도 있고,

심지어 아무리 세뇌하더라도 부모 사후에 변심할 수도 있지?

 

지옥은 절대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고통의 장소라잖아.

당연히 부모로서 자식이 지옥 가는 건 절대적으로 막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런 끔찍한 비극을 원천봉쇄할 방법을 이미 다들 알고 있지.

 

모세는 이집트 공주가, 예수는 요셉이 입양했다고 해.

즉 입양이 문제될 건 없어. 오히려 선행으로 취급되지.

근데 왜 많은 개독은 입양을 하지 않고 굳이 위험하게 애를 낳는 걸까? 

이미 버려진 애들은 많은데 왜 굳이 자기 후손이 대대손손 지옥 갈 가능성을 만들지 못해 안달이냐고.

자기만 천국 가면 그만이야? 왜 자기 멋대로 애가 지옥 갈 리스크를 감수하고 도박을 해? 남이면 몰라도 자기 애잖아.

 

여기서 천국과 지옥을 각각 행복과 불행으로 치환해보자.

결국 정도의 차이만 있지 본질적으로는 똑같다는 거야.

 

또 누군가는 왜 태어나지도 않은 비존재에 대해 미리 걱정해야 하냐고 할 수 있겠지. 이건 비동일성 문제라는 걸로 연결돼.

 

잘 듣는 피부병 치료제가 있다 치자.

근데 이건 임신 중에 먹으면 아기가 기형이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의사가 알려줬다고 치자고.

그런데도 굳이 약 먹는 중에 임신하는 미친 부모가 있을까?

치료 끝나고 안전하다고 하면 그 때 임신하는 게 정상 아니야?

굳이 기형아를 임신하는 부모가 있다면 당연히 욕을 쳐먹겠지?

 

자기가 기형아 키우는 게 불편한 것도 있겠지만 

아이를 위해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는 게 세상 인식이잖아.

 

마찬가지로, 설령 신체적 기형 문제가 아니더라도 정신적 문제든 경제적 문제든 뭐든 애가 불행할 확률이 높아진다면 안 낳는 게 도리 아닐까?

 

일반적으로 여기서 많이 의견이 갈리곤 해.

어느 정도까진 낳아도 된다, 이런 새끼는 안 된다 같은 주관적 기준 때문에 말이야.

특히 가난하면 애도 못 낳냐고 빼애액대는 사람들이 많지.

 

근데 우리는 이미 입양해도 되는 소득 수준을 정했고 심지어 애완동물을 키울 자격 조건조차도 선진국부터 정해가고 있어.

 

그렇다면 출산도 임신도 당연히 자격 조건을 정해야 맞지 않을까?

인간이 애완동물보다 잘 양육받을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면 이상하잖아.

입양 조건을 따지는 것 이상으로, 입양을 필요로 하는 아이를 자꾸 만드는 출산과 임신부터 따져야 맞는 거 아닐까?

 

물론 법으로 대충 임신해도 될 자격 조건을 정해도 그게 절대적이라고 할 순 없겠지.

앞서 말했듯 잘 사는 금수저라고 꼭 행복하단 보장은 없어.

아이러니하게도 서민들의 단골 대사이기도 하지. 아니 금수저도 불행할 수 있는데 지들은 그럼 왜 낳는 거지..

그래서 반출생주의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떻든 간에 다 낳지 말자는 거야.

 

반출생주의는 쇼펜하우어가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동안 묻혀서 그렇지 역사 자체는 오래됐을 거야.

옛날에는 더 살기 힘들었을 테니까. 고대 그리스 신화와 성경에서도 그 편린을 찾을 수 있어.

 

전설에 의하면 마이더스의 손으로 유명한 미다스 왕은 거인 현자 실레노스를 붙잡고 인간에게 가장 좋은 일이 뭔지 물었대. 이에 실레노스는 조롱하듯 웃으면서 그것은 너희에게 불가능한 일,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해. 

 

성경 곳곳에도 안 태어나는 게 나았는데 왜 태어나서 이 고생이냐고, 엄마 자궁에서 콱 죽었으면 좋았다고 한탄하는 내용이 전도서(그 유명한 솔로몬이 한 말을 옮겼다는 랍비 전승이 있음), 예레미야서, 욥기 등에 있어.

 

다들 학교에서 스토아 학파 같은 거 배웠지? 근데 왜 굳이 금욕하고 고행하는지 이해불가였던 사람도 많았을 거야. 대부분 에피쿠로스 쪽을 좋아하지.

 

사실 인도, 중국 등 동양 쪽이 뭔가 욕망을 참고 육식을 안 하고 섹스를 안 하고 속세를 등지며 수양하는 종교 같은 게 되게 많지.  

자이나교 같은 건 극단적으로 살생을 피해서 채식도 이파리나 열매만 먹고 벌레 쫓다 죽을까봐 물어도 냅두고 옷도 안 입거나 하나만 입고 그러고. 

 

서양도 초기 가톨릭에 의해 이단 선고된 교파 집합인 영지주의까지는 그런 게 이어졌어.  

영지주의는 당시에 가톨릭 입장에서 웬만한 이단을 다 몰아넣은 거라서 개개차가 크긴 한데,

대표적인 교리를 하나 꼽자면 세상에 악을 방치하는 신이 선신일 리 없다고 생각해서 유대교의 악신과 예수의 하느님을 분리해서 생각했어.

그리고 예수의 하나님을 기다리면서 유대교의 악신이 좋아할 일을 하지 않기 위해 육식, 결혼 같은 걸 하지 말라고 했대. 아예 임신 안 하게 성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거나, 정 성욕을 못 참겠으면 항문으로만 하라 그랬다더라고. 그땐 콘돔이 없었으니까. 

물론 가톨릭이 집요하게 탄압하고 나중엔 대놓고 십자군 보내 학살해대면서 영지주의 계열은 박멸됐어. 애초에 극단적 금욕주의 자체가 별로 인기가 없기도 하고.

 

근데 왜 대다수 금욕주의 사상이 굳이 채식하고 성욕을 절제하라고 하는 걸까?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나는 이런 금욕주의 사상들이 어쩌면 반출생주의와 큰 그림에서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싶어.  

시대의 한계 때문에 좀 이상한 면도 있고 전승도 조금씩 다르게 됐지만, 사실 저런 채식주의나 성욕 억제 같은 건 타 생명에게 최대한 고통 주지 말고 새로운 고통을 낳지도 말자는 이타심이 아니었을까? 

 

하나만 예를 들자면, 불교에서 번뇌를 이겨내고 해탈(윤회를 끊어냄)하는 것이

곧 성욕을 참고 번식의 순환을 끊어내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는 거지.

하리 싱 구어도 불교가 반출생주의를 내포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어.

 

우리는 생존 경쟁의 결과물이지. 그 과정에서 고통도 진화시키고 남을 잡아먹는 방법도 진화시키고 유성생식과 성욕, 오르가즘 같은 보상도 진화시키고, 자의식과 이성을 진화시켜왔어. 그리고 어쩌면 이 이성이 어떤 임계점에 다다른 게 바로 반출생주의가 아닐까?

페테르 웨셀 삽페는 인간의 의식이 다른 생물에 비해 과잉 진화하는 바람에 의미와 정의라는 망상에 매달리는 불쌍한 존재라고 주장했어. 그리고 이런 부자연스러운 현실 왜곡, 초월 욕구를 피하려면 반출생주의 뿐이라고 했지.

 

아마 누군가는 그냥 혼자 자살하면 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을 거야. 근데 누가 자살하든 말든 사실 반출생주의랑은 그다지 상관이 없어. 태어나지 않는 것/아이를 낳는 것과 자살은 별개의 문제니까.

이미 태어난 순간 우리는 생물의 역사 내내 진화한 생존 본능이라는 목줄이 채워져. 이걸 풀고 자살하려면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를 야기하지? 근데도 안락사도 안 시켜줘.

삶의 스트레스를 기나긴 할부빚이라고 비유하면, 자살은 순간적으로 폭탄빚을 갚는 건데 당연히 쉽지 않지.

물론 도저히 못 견딜 정도가 되거나 생존 본능을 이겨낼 재능이 있으면 자살하겠지만.

 

우린 태어나면서부터 일단 고통을 겪고 시작해.

근데 정말 죽으면 그만이라면, 누군가 납치해서 실컷 괴롭힌 후에 죽게 만들면 그만일까?

그건 다들 옳지 않다고 생각하잖아. 말로는 죽으면 그만이라면서도 인생 조졌고 노잼이니 자살하기로 한 후에 막 사채 쓰고 훔치고 현질하고 강간하고 뭐 다 한 후에 자살하는 경우는 정말 찾기 힘들잖아. 뭐 애초에 죽을 결심이면 뭐가 즐겁겠냐마는.

자살하는 인생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반출생주의는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애 낳고 지만 자살하든 애 죽이고 자살하든 하는 것도 너무 좆같고 애가 불쌍하잖아.

 

반출생주의는 다같이 죽자거나 하는 사상이 아니야. 

강제로 죽이거나 거세하는 것도 남에게 큰 고통을 주는 거니까

그냥 대화가 허용된 선에서 섹스는 하더라도 꼭 피임하고 번식 욕구를 참자고 설득만 하는 거지.

 

사실 반출생주의가 성공할 거란 기대는 데이비드 베너타 등 이쪽 철학자들도 안 해. 

그저 고통과 관한 우리의 윤리관과 유독 모순되고 상충되는 출산 문제에 대해서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하는 것뿐이야.

일종의 양심 선언 같은 거지.

 

마지막으로, 만에 하나 반출생주의가 퍼져서 인류가 멸종 위기에 다다른다면 끝에 가까운 후손들은 외롭고 힘들 수 있겠지.

그래서 내 생각에는 인공지능 발전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봐.

기술적 특이점 알지?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하잖아.

어차피 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의 노동 수요가 줄어드니까 인구가 감소하는 게 낫겠지.

그리고 마지막 인류의 후손이 인공지능이 선사하는 시뮬레이션 우주, 가상현실 속에서 살다 죽든 영생을 누리든 하면 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을 두려워하는데, 생물적 욕구 때문에 죄를 짓는 인간보다 인공지능이 사악할 수 있을까? 인간이 악용할 때가 문제일 텐데 그것도 인공지능이 더 똑똑해지면 통제 불가할 거고.. 어차피 딱히 대안이 없기도 하고 알파고님을 믿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도 부모에 의해 만들어진 생존 기계에 지나지 않는데, 그것도 뇌과학 쪽이나 심리학 공부 하다 보면 인간의 뇌도 그렇고 기억도 그렇고 생각 이상으로 후진 걸 알 수 있지. 

 

근데 이런 원시적인 육신과 생물적 본능에 매여 있지 않으면서 더 똑똑한 정보 존재를 만들 수 있다면?

지금은 좀 멍청해도 인공지능은 생물보다 진화 속도가 비교도 안 되게 빠르기 때문에 틀만 잡아주면 결국 지가 알아서 조만간 우리를 넘어설 거 아냐. 그럼 우린 자연 도태되고 걔네가 우리 후손하면 되는 거 아닐까?

그 다음은 똑똑한 지들끼리 우주 정복을 하든 안락사를 하든 알아서 하라고 하면 되는 거지.



 

1. 인간의 출생에 대해 부정적인 철학적 입장.

2. 출산은 도덕적으로 나쁘기 때문에 삼가야 한다고 주장.

3. 미리 합의되지 못한, 낳음당하는 존재의 고통 가능성 차단을 목적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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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지혜2019. 11. 20. 19:57

이세돌 라이벌


시대를 제패했던 이세돌이지만, 그에게도 라이벌은 있었어.

바로 중국기사인 구리(古力)였지.

사람들은 보통 이세돌이 구리에게 많이 앞선다고 생각을 하지만 착각이야

두사람의 상대전적은 25승 1무 25패, 정확하게 반반이지.

아마도 이세돌의 승리에는 강렬한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대국이 많았기 때문일거야.




인연이랄까, 악연이랄까 두사람 사이에 본격적인 불이붙는 사건은

바로 2012년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즈였어.

이전까지, 이세돌이 세계1인자이기는 하지만 동갑내기기사 구리의 활약도 만만치는 않았어.

실제로 조별예선에서 만난 두 사람은 4패빅이라는

수많은 바둑대국에서도 정말 보기 힘든 무승부를 연출했고,

재대국끝에 구리가 승리하여 먼저 상위라운드로 진출하게 돼.

이세돌도 이후 다른 기사들을 잡으며 결국

진검승부처럼 세계메이저대회인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3번기(3판2선)로 두사람은 맞붙게 되었던거야.

삼성화재배는 이름에서 알다시피 우리나라대회이고 따라서 우리나라룰로 진행하게돼.

잠깐 룰에 대해 간단히 짚고넘어가자면

바둑을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어려운 이야기일수도 있는데,

쉽게말해서 바둑을 다두고 집계산을 할 때(계가) 

중국룰은 백에게 덤을 7.5집을 주고, 한국룰은 6.5집을 주지. 한 집 차이야.

흑이 먼저두는 만큼 그 유리함을 상쇄시켜주는 개념인데 그 유리함이 어느정도냐를 

다르게 보는게 중국과 한국의 차이였지.

 








결승전의 결과는 1국과 3국에서 이세돌이 승리하면서 2:1로 우승을 하게 돼.

그런데 운명의 장난처럼 이세돌은 두 판 다 반집승을 하였고,

구리는 2국에서 만방으로 불계승(초토화를 시켜서 이세돌이 포기)을 했지.

중국입장에서는 안그래도 이세돌이 얄미워 죽겠는데 

이 결승전의 결과로 아주 분통을 터트리게 돼.

大李未走 小李又至 (대리미주 소리우지) 라는 말이 중국에 있었는데

큰 이가 가지도 않았는데, 소 이가 왔다라는 뜻으로

이창호와 이세돌을 비유한 말이지.

중국에서도 존경의 대상이고 우상이었던 이창호만큼

이세돌의 실력도 인정을 받았던 거야.

하지만 이세돌을 이창호처럼 완전한 지존으로 인정하기에는

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구리라는 존재가 용납을 안했는데

결승전의 억울한? 패배로 그 아쉬움이 폭발했던거지.



 
 
 
이때, 가구재벌이자 구리의 광팬이었던 니장건 회장이 

구리의 패배를 납득하지 못했는지 전설의 10번기의 스폰서로 나서게 돼.

바둑역사적으로도 10번기는 몇 번 있었는데 

근대에 들어와서는 거의 없었고 오래된 대국들도

토혈대국으로 비유될만큼 이른바 목숨을 거는 대국들이었어.

왜냐하면 10번기는 핑계의 여지가 없는, 그야말로

실력대 실력의 진검승부이기때문에 패자는 엄청난 타격을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큰 이벤트였거든.

그렇기에 스폰서의 문제는 둘째치고, 

한창 잘나가는 두 기사가 이렇게 맞붙는것은 사실 정말로 어려운 일이었던 거야.





당시 국내대회의 상금은 많아야 5천만원이었고

메이져세계대회의 상금은 3억원 정도였어.

그런데 두 사람의 10번기의 상금은 무려 약 10억원.

어마어마한 상금이었던만큼 승자와 패자의 상금분배에 관해서 조율을 하던 중

(보통 세계대회우승 3억, 준우승 1억5천)

이세돌은 강력하게 승자독식을 주장하게 되고 

결국 승자가 약 9억, 패자가 약 4천만원이라는 바둑사에 찾아볼 수 없는 

Winner Takes It All 경기가 열리가 되지.

대국룰은 당연히 중국룰이었고, 

10번기는 약 한달에 한 대국씩 중국의 명소들(9곳)과 한국의 신안(이세돌의 고향)에서 두기로 합의했어.

합의과정에서 재밌던 점은 이세돌이 제한시간 약 4시간의 장고대국을 주장했고

속기파로 유명했던 구리가 이를 쿨하게 받아들였다는 것, 

또 결과가 5:5가 되면 주최측은 추가3번기를 제안했는데

이세돌이 그러면 뭐가 10번기냐, 그렇게 되면 상금은 반반으로 하고 끝내자라고 해서

거의 이세돌의 주장을 들어줬다는 점이야.










10번기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세돌 10번기


1국과 2국을 이세돌이 연달아 승리하였고,

3국과 4국(신안)을 구리가 승리하면서 2:2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게 되지.

두사람의 운명을 가른 그 유명한 5국은 중국 원난성의  샹그릴라에서 열렸어.

이 대국 이전까지 이세돌은 구리에게 4연패(10번기 중 2연패 포함)중이었고

이세돌 개인적으로도 구리에게 4연패는 처음이었어.

5국마저 지게되면 5연패에 빠지고

10번기의 승부도 승승패패패로 역전을 허용하는 절체절명의 한판이었지.

샹그릴라는 고산지대로 골초였던 이세돌의 표현을 빌리자면

담배1갑을 피면 평소의 담배10갑을 피는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고 해.

고산대국으로 두사람의 건강도 염려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혈기왕성했던 나이답게 무사히 대국은 끝나게 되고 

결과는 이세돌의 승리.

이 후 3연승을 추가하며 총 전적 6대 2로 10번기의 승자는 이세돌로 확정되었지.

마지막 8국은 구리의 고향인 충칭에서 열렸는데 

구리입장에서는 참 뼈아픈 대국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

중국에서는 이세돌의 사주(83년 3월 2일)가 구리의 사주(83년 2월 3일)와

상극이라 구리가 이세돌에게 기를 못 펴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어.


구리와 이세돌구리와 이세돌






승부의 세계에서 정이 든 만큼 

두사람은 우정도 나눴는데, 둘다 주당으로 만나면 밤새도록 술을 퍼마시곤 했다고 해.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결혼식에도 참가해 줄 정도..

이후 이세돌은 명실상부한 세계1인자의 자리에 올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후 먼저 메이져세계대회 우승을 한 건 구리였어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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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지혜2019. 11. 20. 09:47


한국바둑의 풍운아 이세돌이 드디어 은퇴를 선언했다!!

95년 입단한 후, 24년 4개월 만이야..

다른 스포츠계와 달리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은퇴를 하지 않는 바둑계에서

83년생인 이세돌의 은퇴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지.

허나 그의 은퇴는 예견되어 있었고,

또 언젠간 일어날 일이었다는 점에서 그렇게 놀랍지만은 않았어.



그는 입단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한 이후부터 

한국기원과 꾸준히 마찰을 빚어왔지.

3단시절, 당시에 한국프로기사는 승단대회를 통해서 

일정한 포인트를 쌓아야 승단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는데

최초로 반기를 든게 이세돌이었어.

한창 잘나가는 그의 입장에서는 한 해 둬야 하는 대국수도 많고

스케쥴도 빡빡한데, 

별 의미도 없고, 대국료도 적은 승단대국을 두기 싫었을거야.

당시에 아직은 활황이었던 국내 외 많은 토너먼트대회에 집중하는것이

자신의 커리어적인 면과 금전적인 부분에 도움이 될것은 명백했거든.



1인자에게 많은 의존을 하게되는 바둑계의 특성상 

이창호 이후 새로운 황태자로 떠오른 이세돌의 입김과 파워는 대단했지.

그렇다고는 해도 주변눈치안보고 자기목소리를 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었을거야.

이세돌의 반기에 한국기원은 결국 승단대회를 폐지했고 

각종 대회의 성적에 포인트를 부여해 승단포인트를 쌓는식으로 시스템을 바꿨어.

이는 이세돌과 같은 초일류 기사에게는 반가운 일이었지만,

90프로 대다수의 기사들, 특히 토너먼트기사가 아닌

생계형, 보급형 바둑기사들에게는 매우 서운한 일이었어.

왜냐하면 그들은 바둑기사이기는 해도 실력이 부족해 

각종 대회의 예선에 참가해도 본격적으로 대국료를 받게되는 본선을 오르기는 불가능하고

1년에 둘 수 있는 대국도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지.

대국을 둬야 대국료가 나오는데 승단대국등을 제외하면

수입이 마땅치가 않았던거야.

그래서 어찌보면 낡은 관행타파에 앞장섰던 이세돌이었지만

관행에 익숙했던, 기존의 이익을 원했던 사람들은 

이세돌을 많이 미워했어.




아무튼 이세돌은 무서운 속도로 입신이라 불리는 9단에 승단했고,

국내는 물론이고 메이져 세계대회에서도 날아다니며

세계1인자의 자리를 수성해 나갔어.

하지만 쌓이는 상금이 많아지는 만큼 한국기원과의 문제는 또다시 불거졌어.

한국기원은 일률적으로 상금의 10~15%를 공제했고

또한 기사회에서도 3~5%를 또 공제했어.

예를 들어 중국이나 일본주체 세계대회 우승을 하면

그 나라에서 세금을 공제하고 

우리나라에서 세금을 또 공제하고 한국기원에서도 공제, 

마지막으로 기사회에서도 공제를 하기 때문에 빡칠만도 했지.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기사회의 공제인데,

기사회는 사실 친목단체일 뿐이야.

하지만 프로기사들은 예외없이 입단시에 기사회에 가입되었고

그에 따라 소속기사들의 상금을 공제해갔지.

한국기원이나 기사회의 입장에서는 

특출난 소수의 기사들이 혜택을 받는 바둑계의 특성상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개념으로 다수에게 혜택을 돌려주는 개념으로 봐달라고 했고

이세돌은 그에 강력하게 반발했어.

이세돌과 한국기원이 부딪힐때마다

이세돌이 휴직계를 내버리고, 법적인 태클을 걸자

한국기원은 정관을 고쳐나가기 급급했지.

예를 들어 기사회의 소속만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등등

은퇴를 한 현 시점에서도 소송은 진행중이고

아마 1차변론기일을 마친것으로 알고 있어.

이세돌은 친목단체인 기사회에서 상금을 공제한것에 대해

3200여만원의 금액을 반환하라고 소송을 했는데

이면을 살펴보면, 영수증처리요청도 무시하고

집행내역공개도 거부하는등 문제가 없지만은 않은 것 같아.

이세돌은 프로기사 커리어내내 협회와 마찰을 빚어왔고

천성이 반골인듯한 그의 기질 상 돈문제를 떠나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끝까지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아.

이세돌이 돈을 밝힌다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중국쓰촨성지진때는 당시 우승했던 대회상금을 전액기부하기도 하는걸 보면

돈보다는 명분과 신념을 따른다는 느낌을 받게 돼.




이세돌의 특성을 보여주는 일화를 하나 소개하자면,

세계대회에 참가했을 때의 이창호의 모습과 비교되는게 있어.

당시에 세계대회를 참가하면 주최측에서는

본선참가기사에게 여비를 지급해주는 것이 보통이었어.

예를 들어 일정이 열 흘 이면 하루 당 10만, 총 100만 원을 준다던지 하는식으로 말야.

이걸로 식사를 해결하고 품위유지를 하라는 것인데,

문제는 대회에 참가하면 기사만 딸랑 가는것이 아니고

협회직원들도 따라가야하고 국가대표코치진 등도 같이 가게 마련이지.

근데 이창호의 경우에는 여비를 받으면, 큰 돈은 아니지만

협회직원에게 봉투를 그대로 주며 알아서들 쓰세요..

하곤 했단 말야?

그럼 직원들 입장에서는 너무 고마운거지

박봉에 해외출장인데(경비처리가 되는건 둘째치고) 그런식으로 도와주면 좋아하지 않을수가 없잖아?

하지만 이세돌에게는

그런식의 마인드는 통하지 않았지 ㅋ

한번은 으레그랬듯이 선배기사들과 후배기사들, 직원들이 모여 같이 식사를 하고 

기사들이 갹출을 해서 엔빵치자~ 했는데

이세돌은 내가 왜요? 싫습니다하고

혼자서 내가 먹고 싶은거 먹고 내 몫만 내겠다~ 했다는 일이 있어.

철저한 개인주의이고 아메리칸 마인드지.

선악의 문제는 각자 개인들이 판단할 문제지만

보수적이기로 끝판왕인 바둑계에서는 당연히 곱게 보질 않았겠지?

하지만 실력이 출중하니 어떻게 응징할 수가 없었던거야~

그래서 이세돌이 계속 목소리를 내고 싸워나갈 수 있었던 거지..

근데 그렇게 이세돌이 같이 모여 식사하는걸 거부한 이후로

그런 문화가 없어졌는데 후배기사들은 굉장히 좋아했다고 해.

프로기사들이라고 해도 세계대회에서 잘나가는 건 보통 10대~20대인데

단장이하 직원 및, 선배들이랑 식사를 하는건 불편하기도하고

메뉴도 어른들이 정하고 여러모로 싫은 점이 많았을거야.

경기력유지를 위해 편하게 있어야 할 자유시간마저 

스트레스를 받았던 건데 이세돌사건 이후로 

각자 알아서하는 문화로 바뀌었다니 당연히 좋아할 수 밖에.





이외에도 한국바둑리그의 문제도 이세돌과 충돌을 빚어왔어.

바둑의 인기 및 흥행보다는 기존의 밥그릇 및 대국료 지키기에 혈안이 되어있는 모습이었거든~

근데 300명 이상의 대다수의 프로기사들과 협회 및 직원들은 다 이세돌의 반대편이라는게 

그에게는 외로운 싸움이었지. 실력보다는 복지에 신경을 써주는게 그들에게는 이익이었으니까.

이것까지 서술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거 같아서 스킵할게.




아무튼 이세돌 은퇴의 표면적인 이유는 

성적저하에 따른 1인자의 자존심이 용납을 할 수 없기에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이지만

커리어내내 갈등을 빚어왔던 한국기원, 기사회, 동료바둑기사들과의 관계가

결국은 걸림돌이 되었다 라는게 결론이야.

여담이지만, 이세돌의 입장에서는 돌부처 이창호가 선배라는게 참 운이 없었던거 같아.

성격과 행보, 1인자에서 내려온 이후까지 너무나도 정반대의 모습이거든.

물론 이창호가 전주의 유명한 금은방시계점 금수저출신이라는 점과 

이세돌은 선생집안의 신안 비금도 출신이라는 점이 영향을 끼쳤을 수도..

많이들 아는 이야기지만, 이세돌은 5남매이고 전부 서울로 상경을 했어

이세돌이 성적을 내고 크게 성공을 하기 전에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아버지를 많이 따랐던 이세돌은 실어증이 걸릴 정도였지.

그 후유증으로 목소리에도 이상이 왔다고 해.

가난했던 집안에 

5남매가 전부 서울에서 생활(큰형은 프로기사, 둘째형은 서울대공대입학, 누나둘은 이대입학)을 했기에

더더욱 어려운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어.

그래서 큰형인 이상훈 기사가 이세돌의 기재를 보고 뒷바라지를 많이 한것은

바둑계에서 유명한 이야기야.


 

 

 
 
 
 
이창호가 금수저이기때문에 베풀기를 좋아하고 바둑계에서 존경을 받았고,

이세돌은 흙수저이기때문에 관행에 반기를 들고 개인의 이익을 철저히 강변했던것일까?

그것까지는 난 모르겠어..

아무튼 이창호는 바둑실력을 떠나 인품으로도 존경을 받을만한 인물이었고

이세돌은 바둑계내에선 욕을 먹었을지언정 한국인에게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기사임에는 분명하지.

바둑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이세돌의 인지도가 넘사벽이니까 말야.



 
 
끝으로 한국바둑계는 전라도(김인-강진, 조훈현-목포, 이창호-전주, 이세돌-신안)가 꽉 잡고 있었는데

그이후로 박정환(서울), 신진서(부산)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서 참 다행이고~

이세돌이 조훈현처럼 은퇴한 후 정치를 한다면

철저히 합리적이고 자유주의자적인 그의 면모를 봐서

보수계로 입당하면 잘 어울리것 같다는 생각을 해봐.



 
 
 
3줄요약
 
1. 이세돌은 철저한 개인주의자
 
2. 이세돌의 은퇴는 바둑계와 그간의 마찰이 영향을 줌
 
3. 은퇴 후 보수계로 입당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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